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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 나는 소설가이고 내 친구들 중에는 훌륭한 소설가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들과 이야기를 할 때는 나와 그들이 아주 다른 일을 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무엇 때문에 그런 느낌이 들까요?" 육 초가 흐른 후 그가 말했다. "아주 간단하지. 예술가엔 두 종류가 있는데 이건 결코 뛰어남의 차이가 아니야. 하지만 한 부류는 지금까지 자기가 만든 작품의 역사에 대응하고, 다른 부류는 인생 그 자체에 대응한다네." "솔, 당신에게 타고난 재능이 있나요?" 육 초가 흐른 후 그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런 건 없다네. 하지만 어떤 작품에서든 사람들의 반응은 예술가가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어떻게 노력했는가에 맞춰지지."
-- 커트 보네거트, <나라 없는 사람> 중에서
한 해의 마지막 날이 그해 가장 추운 날처럼 느껴지기는 오랜만이다. 남쪽 항구의 강바람에서 회색 심장의 도시로 돌아온 첫 겨울이다. 계단에 쌓인 눈 위로 부는 영하 십몇 도짜리 바람이 배신자처럼 낯설다. 그리워하던 사람들이 있는 도시로 돌아왔으나 그간 그리움으로 살지 않았던 그이들은 그만큼 더 멀리 나아가 있다. 지친 모습이 보인다. 손을 뻗어보다가 알게 된다. 내가 만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지금의 나는.
서울의 가을은 방황하기에 낯설어 이리저리 불러줄 곳을 찾아다녔다. 마음을 주는 말은 쉽지만 마음을 얻는 말은 어려움을 지리하게 깨달았다. 말은 쉽지만 행동은 어려움을 번번히 깨달았다. 성급히 약속하고 천천히 배신하는 일이 반복되자 견딜 수가 없어졌다. 자랑할 수도 칭얼거릴 수도 없게 되자 거짓말이 늘기 시작했다. 시가 멈췄다. 벗이 떠난 도시로 돌아온 여름은 뜨거웠다. 에어콘과 더불어 영어를 공부했다. 공부하자 효과가 있었고, 즐거웠다. 어느새 더이상 에어콘을 켜지 않는 때가 되었고 여름은 식었다. 그밖에는 가을 때문에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강 하구에서의 마지막 봄은 여유로웠고 후회없이 바빴다. 누군가의 호의적인 기대를 받을 때 힘을 발휘하는 자신을 인정했다. 떠날 때 들리는 말이 아름답고 싶었었고, 그렇게 되어 만족스러웠다. 올해가 시작되던 겨울, 날개를 쳐 중력을 이기고 올라가는 벗을 바라보고 있는 나를 보았다. 발돋움질을 하고 있었다. 올해가 끝나는 겨울, 나는 열두 장의 크리스마스 카드를 쓰고서 칼슘이 빠져나간 뼈 같은 내 말들을 보았다. 해가 시작되는 겨울, 골다공증에 걸린 꿈을 다시 생각한다. 새해에는 뼈를 튼실하게 키워야겠다. 부러진 뼈는 다시 붙을 수 있지만 스스로 구멍이 숭숭 뚫려 부스러지는 뼈에는 대책이 없다. 나는 부스러지지 않고 사는 것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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