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고 있는 회사 바로 옆에 '테크노파크'라고, 중소기업들이 입주해 있는 큰 빌딩이 있다. 이 건물 1층에 비즈까페라는 이름이 붙은 공간이 있다. 삼사백 권 정도 되어 보이는 책들이 세 개의 서가에 꽂혀 있고, 서가 뒤에 두 사람이 마주앉을 수 있는 조그만 탁자와 의자가 서가를 따라 네 테이블 정도 놓여 있다. 서가 반대쪽 까페 한켠에는 입주 기업의 제품을 홍보하는 부스와 간단히 바이어를 만날 수 있는 회의탁자가 있다. 서가가 띄엄띄엄 놓여 있어 테이블로 가는 통로 역할을 하고, 완전히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막힌 공간을 만들어 준다. 의자에 앉으면 오른쪽은 서가가 막아주고, 왼쪽은 통유리로 된 창을 통해 밖이 내다보인다.
어제부터 점심을 먹고 나서 여기에 앉아 서가에서 집어든 책을 읽었다. 내 책이었으면 밑줄쳤을 만한 부분을 옮겨적다 보니 점심시간이 훌쩍 갔다. 기분좋은 경험이었기 때문에 반복해서 습관을 삼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표는 꾸준히 해서 한 책을 다 떼는 것.
<프로페셔널의 조건>, 피터 드러커, 이재규 옮김 (이미지 출처는 교보문고)
*100308 월요일
나는 오전 일곱시 반에 출근하여 오후 네시까지 일했고, 토요일에는 정오에 마쳤다. 따라서 내겐 시간이 남아돌았다. (...) 나는 주중의 5일 종안은 함부르크의 유명한 시립 도서관에서 저녁 시간 대부분은 보냈는데, 그 도서관은 내가 근무하는 회사 바로 근처에 있었다. 대학생은 원하는 대로 얼마든지 책을 빌려볼 수 있었다. 15개월 동안 나는 독일어와 영어 그리고 프랑스어로 된 책을 읽고 읽고 또 읽었다. p154-155
일 년에 두 번씩, 정월 초하루 바로 다음날과 6월에 시작되는 휴가철 바로 직전에 우리는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 하루 종일을 지난 6개월간 우리가 했던 일에 대해 토론하면서 보냈다. 편집장은 언제나 우리가 잘한 일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그 다음에는 우리가 잘하려고 노력한 일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또 그 다음에는 우리가 잘하려고 충분히 노력하지 않은 분야를 검토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가 잘못했거나 또는 실패한 일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했다. p160
모임의 마지막 두 시간 동안에는 앞으로 6개월간 해야 할 일을 계획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집중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우리가 개선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우리들 각자가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인가 등을 논의했다. 그리고 일주일 뒤 우리 각자는 다음 6개월간의 새로운 업무 계획과 학습 계획을 편집장에게 제출해야만 했다. 나에게는 일년에 두 번 있는 그 회합이 무척 즐거웠지만, 신문사를 떠난 뒤에는 곧 잊어버리고 지냈다. p160-161
그 이후로 나는 줄곧 여름만 되면 2주일간 시간을 따로 할애해서 지난 1년 동안 내가 한 일을 검토하고 있는데, 처음에는 내가 비록 잘했지만 더 잘할 수 있었거나 또는 더 잘 했어야 하는 일을 검토하고, 그 다음에는 내가 잘 못한 일, 마지막으로 내가 했어야만 했는데도 하지 않은 일을 차례로 검토한다. 이를 바탕으로 나는 컨설팅 업무, 저술 활동 그리고 강의에 있어서 우선 순위를 결정하여 계획을 수립한다. (...) 나는 그 계획을 통해 베르디의 교훈, 즉 '완벽을 기하기 위한 노력'을 하면서 살고 있다. 비록 그 완벽이라는 것이 늘 나를 피해 갔고, 지금도 나를 피해 가고 있지만 말이다. p162
공부를 하면서 차츰 나만의 공부법도 개발하게 되었는데, 나는 지금까지도 그 방법을 이용하고 있다. 나는 3년 또는 4년마다 다른 주제를 선택한다. 그 주제는 통계학, 중세 역사, 일본 미술, 경제학 등 매우 다양하다. 3년 정도 공부한다고 해서 그 분야를 완전히 터득할 수는 없겠지만, 그 분야가 어떤 것인지를 이해하는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다. 그런 식으로 나는 60년 이상 동안 3년 내지 4년마다 주제를 바꾸어 공부를 계속해 오고 있다. 이 방법은 나에게 상당한 지식을 쌓을 수 있도록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나로 하여금 새로운 주제와 새로운 시각 그리고 새로운 방법에 대해 개방적인 자세를 취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공부한 모든 주제들 각각은 서로 상이한 가정을 하고 있었고, 서로 다른 방법론을 사용하고 있었다. p159-160
:: 이 책을 집어들게 만든 부분. 김창준님의 글 '중층적 학습 주기'에서 이 부분을 읽고 때문에 드러커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이 부분이 나오는 6장(인생을 바꾼 7가지 지적 경험)부터 읽기 시작했다.
*100309 화요일
의사, 고등학교 교사, 바이올리니스트가 서로 다른 만큼이나 성과를 올리는 사람들 역시 서로 많이 다르다. 성과를 올리는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만큼이나 천차만별이다. 그들은 인간 유형, 개성, 그리고 재능의 측면에서 무능한 사람들과 구별이 되지 않는다. 성과를 올리는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것은 자신의 능력과 존재를 성과로 연결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실행 능력뿐이다. 이러한 실행 능력은 기업, 정부 기관, 병원, 대학, 어느 조직에서 일하든지 간에 성과를 올리는 사람들의 공통점으로 드러났다. p133
한편으로 나는, 이러한 실행 능력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지능과 근면성과 상상력이 뛰어나다 해도 결국에는 실패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한 그런 사람은 목표 달성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도 확인하였다. p133
실행 능력은 하나의 습관이다. 즉 습관적인 능력들의 집합이다. 실행 능력은 지속적으로 배워야 가능한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단순한 것이기도 하다. (...) 우리 모두가 구구단을 외우는 것처럼 실행 능력을 몸에 익혀야 한다. 다시 말해, '육 곱하기 육은 삼십육'이 무의식적으로 입에서 튀어나올 만큼 확실히 몸에 배인 습관이 될 때까지 '지겹도록' 반복해서 외우듯이 실행 능력도 그렇게 몸에 익혀야 한다. 실행 능력은 실행, 그것도 반복적인 실행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는 것이다. p133-134
달리 말해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어떤 특정 분야에서 일정한 수준의 역량을 획득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 분야에서 대가가 되기는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대가가 되기 위해서는 타고난 특별한 재능이 필요하니까 말이다. 그러나 목표 달성 능력을 갖추는 데 필요한 것은 특별한 재능이 아니라 노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만큼의 역량이다. 말하자면, '음계대로 피아노를 칠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한 것이다. p134
:: 드러커는 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수준높은 음악 교육을 받을 수 있었는데, 십대 시절에 피아노를 가르치던 선생이 그에게 "너는 대가들처럼은 결코 연주할 수 없을 게다. 하지만 악보를 보고 음계대로 피아노를 칠 수는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드러커는 이 말 뒤에 선생에게는 너무나 당연해서 생략된 말이 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대가들도 악보를 보고 음계대로 치는 연습을 하지 않았다면, 결코 대가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베르디가 80살에 작곡한 오페라 '폴스타프'를 보고 감격해 찾아본 자료에서) 베르디는 이렇게 썼다. "음악가로서 일생 동안 완벽을 추구해 왔다. 완벽하게 작곡하려고 애썼지만, 하나의 작품이 완성될 때마다 늘 아쉬움이 남았다. 때문에 나에게는 분명 한 번 더 도전해 볼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 나는 베르디의 이 말을 잊어 본 적이 없다. p157
베르디는 그때 내 나이였던 열여덟 살이 이미 노련한 음악가였다. 그러나 그때 나는 겨우 면제품 수출 사업으로는 성공할 것 같지 않음을 확인한 것 외에는 장차 무엇이 될 수 있을지 전혀 생각해 보지도 않고 있었다. 열여덟 살의 나는 그 나이 또래의 다른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성숙하지 목한 풋내기였고, 나약했다. 그로부터 15년이 더 지나 30대 초반이 되어서야 나는 내게 어떤 소질이 있는지 그리고 어디에 속해야 하는지를 진실로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하든지 간에 베르디의 그 교훈을 인생의 길잡이로 삼겠다고 결심했다. 나이를 더 먹게 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정진하리라고 굳게 마음먹었다. 살아가는 동안 완벽은 언제나 나를 피해갈 테지만, 그렇지만 나는 또한 언제나 완벽을 추구하리라고 다짐했다. p157
전문가의 생산물은 다른 전문가의 생산물과 통합되었을 때에만 비로소 성과가 될 수 있다. (...) 달리 말하자면, 전문가는 자신의 단편적인 산출물을 성과를 올리는 생산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 '누가 그것을 이용할 것인가' 그리고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이 알아야 할 것과 이해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를 철저하게 고려해 봐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p143-144
지식을 습득한 사람은 항상 그것을 남에게 이해시켜야 할 책임을 지고 있다. 어떤 분야의 문외한이 전문가의 지식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할 수 있다'거나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그리고 전문가는 소수의 전문가 동료들과 말이 통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가정하는 것은 야만스러운 오만이다. 대학이나 연구소 내부에서 이런 태도--유감스럽게도 오늘날 너무나 흔한 태도--는 전문가를 쓸모없는 존재로 만들고, 또 그의 지식을 진정한 학식이 아니라 장식적인 현학으로 변질시킨다. p144
:: 위 두 문단은 진보적인 담론을 생산하거나 소비하는 사람들(나를 포함해서)에게도 적용되는 이야기 같다.(단, 약자가 이해받으려면 스스로 모든 것을 설명해야 한다는 논리로 빠지면 안될 것이다.) 어느 정도 알게 되면 오히려 점점 말이 통하는 사람들에게만 말하게 된다. 그러고 있으면 말이 통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줄어든다. 결국 진보적인 공동체를 꿈꾸지만 외연이 확장되지 않는 악순환이 일어난다.
페이디아스(Phidias)의 작품들은 오늘날까지도 서구 미술 역사상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보는 사람마다 모두들 그의 작품을 칭송했지만, 정작 아테네의 재무관은 페이디아스의 작품료 지불을 거절했다. 재무관의 거절 사유는 이런 것이었다. "조각들은 신전의 지붕 위에 세워져 있고, 신전은 아테네에서 가장 높은 언덕 위에 위치해 있다. 따라서 사람들은 조각의 전면밖에 볼 수가 없다. 그런데도 당신은 우리에게 전체 조각 값을, 다시 말해 아무도 볼 수 없는 조각의 뒷면 작업에 들어간 비용까지 청구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에 대해 페이디아스는 "아무도 볼 수 없다고? 당신은 틀렸어. 하늘의 신들이 볼 수 있지." 하고 대꾸했다. '폴스타프'를 관람하고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은 때에 이 이야기를 읽었는데, 이는 나에게 또다른 충격을 주었다. 나는 항상 그렇게 살지 못했다. 나 역시 제발 신들이 눈치채지 않기를 바라는 그런 식으로 일을 한 적이 많았다. 그렇지만 페이디아스는 내게 어떤 일을 할 때 오직 '신들'만이 그것을 보게 될지라도 완벽을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었다. p157-158
- 내가 관찰했던 모든 조직에서 인적 자원의 최대 낭비는 단연코 승진 관리의 실패에서 비롯되었다. 승진을 하여 새로운 직무를 맡은 유능한 사람들 가운데 계속해서 성공을 거두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완전히 실패했다. 그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성공도 실패도 아닌 보통 수준에 머물렀다. 소수의 사람들만이 성공했다.
그러면 10년 내지 15년 동안 유능했던 사람들이 왜 갑자기 무능해져야 했는가? 내 경험을 통해 보건대, 그 이유는 60여 년 전에 내가 런던의 은행에서 저질렀던 실수를 그들도 똑같이 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새로운 직무를 맡은 뒤에도 과거에 이미 성공을 거두었던 일 그리고 그들을 승진시켜 준 그 일을 계속했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무능한 사람으로 전락하고 마는데, 그렇게 되는 것은 그들이 정말 '무능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정말 해야 할 일을 놔두고 다른 부적절한 일을 했기 때문이다. p163-164
- 새로운 직위에서 성공하기 위해 반드시 뛰어난 지식이나 재능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새로운 직위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 직위에서 요구하는 일에 대한 집중이 필요하다. 그리고 새로운 도전과 직무 그리고 과업을 수행하는 데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일에 대한 집중을 필요로 한다. p164
- 예수회 신부나 칼뱅파 목사는 어떤 중요한 일을 할 때마다, 예를 들면 어떤 중요한 의사 결정을 할 때마다 자신이 예상하는 결과를 기록해 두었다. 그리고 9개월 후에는 실제 결과와 자신이 예상했던 결과를 비교해 보는 피드백 활동(feedback analysis)을 한다. 그것은 그들이 잘한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들의 장점은 무엇인지를 신속하게 알려준다. 그것은 또한 그가 무엇을 배워야만 하는지 그리고 어떤 습관을 바꿔야 하는지도 알려준다. 마지막으로 그것은 그가 소질이 전혀 없는 분야가 무엇인지 그리고 잘할 수 없는 일이 무엇인지도 가르쳐준다.
나는 이 방법을 50여 년 동안 꾸준히 실행해 오고 있다. 피드백 활동은 우리의 장점이 무엇인지 밝혀주는데, 이 장점은 한 개인이 자기 자신에 대해 알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장점은 한 개인이 개선해야 될 것이 무엇인지를 그리고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또한 그것은 한 개인이 할 수 없는 것, 심지어는 시도조차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명백히 밝혀준다. 자신의 장점을 안다는 것, 그 자신을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를 안다는 것,그리고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는 것-- 이것들이 바로 지속적 학습의 관건이다. p165
:: 개선이라고 하면 나는 약점 내지 문제점을 보완하는 것을 떠올린다. 그러나 드러커는 '자신을 개선한다'는 표현을 자신의 강점을 더욱 향상시킨다는 의미로 말한다.
# by joofam | 2010/03/09 14:34 | 읽기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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